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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12월 24, 2024

IMF 년도, 왜 그해 겨울은 지독했을까?

울이었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빙하기 입구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호황의 연속이었고 성장률은 의욕만큼 높았다. 흥겨운 분위기에 눈은 멀었다. 이미 어두운 동굴 속에 들어왔음에도 안이 아닌 밖을 보고 눈부신 빛에 취했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후 바라본 동굴 안의 깊은 어둠은 그 실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허겁지겁 손을 뒤져 불을 찾았으나 없었다. 가득하리라 생각했던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IMF 년도, 왜 그해 겨울은 지독했을까?

국가부도의 날을 아십니까?

looks_one발화 지점은 어디일까? – 선진국에서 단기로 빌린 돈을 금리가 높은 동남아에 장기로 투자했다. 동남아의 경제가 수년째 위축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경제 위기가 시작된 시점은 1997년 초이다. 1월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등 연쇄 파산이 일어났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는 이미 1991년부터 적자의 연속이었다.

looks_twoIMF의 정확한 시기는 언제일까? – 나라에 돈이 없었다. 하나도 없었다. 망한 나라를 살리기 위해 IMF에 요청한 도움이 시작된 시점과 종점은 1997년 12월 3일~2001년 8월 23일이다. 국가가 파산한 상태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1998년 2월 25일 ~2003년 2월 24일)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확고한 정치 철학을 품은 리더십과 근면한 국민성이 만나 국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

looks_3서민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 한국은 구제금융의 대가로 IMF의 조건을 모두 수용했다. 빚의 대가는 혹독했다. 긴축 정책과 정리해고로 수많은 사람이 세상의 끝으로 내몰렸고, 끝내 세상을 버렸다. 서울시 노숙자만 8,000명까지 늘어났다. 그 삶이 지금까지 지속된 노숙자도 많다.

장기밀매가 급증했다. 물가 폭등으로 생필품 사재기가 극성이었다. 강남과 목동 일대 아파트들이 급매물로 쏟아졌다. 환율은 달러당 2,000원을 넘으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치원에서 ‘아빠, 힘내세요’ 동요를 가르쳤다. 그해 겨울은 춥고 어두웠다.

한국은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 불린 외환위기를 단 2년만에 극복했다. 빛의 속도로 나라의 빚을 모두 갚았다. 그러나 많은 알짜기업의 대주주가 외국인으로 바뀌었으며, 수많은 가장들이 쓰러졌고 무너졌다. 또한 경제적 파탄으로 부의 쏠림과 양극화가 심화되어 최악의 악(연쇄살인범)이 잉태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IMF는 대한민국에 많은 것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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